• 근대과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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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인터랙트

    Apr 01, 2022

      

      서구 사회에서 근대과학의 탄생은 흔히들 16-17세기라고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도한 탄생은 아니다근대 과학의 씨앗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리스인들의 자연을 합리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세와 방법론세계관과 근대과학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다만 자연을 무서워하거나 신성시하며 종교적인 방식으로만 대하던 때가 있었다이후 고대 그리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합리적인 사고와 추론을 바탕으로 질서를 갖는 우주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했다신화에서 철학으로의 첫 이행이 바로 그리스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철학은 자연학과 형이상학 두 가지로 생각을 세분화하였고 이에 대한 사고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이때자연학은 현대의 과학처럼 자연의 질서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면, 형이상학은 자연의 질서와 사물의 존재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를 제공했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은 근대 과학의 기원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이유를 갖게 된다.  


      

      이후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 과학이 태동한 17세기 사이에는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 천 년이 포함되어 마치 과학의 진보가 멈춰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암흑의 시간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이행기는 지난하지만 착실히 진행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불이 붙듯 연쇄적으로 발전해 나갔다과학사가들은 이 시기를 근대 과학 혁명기로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했던 1543년부터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발표한 1687년까지를 말한다

     

      찰스 길리스피의 저서 <객관성의 칼날>에 의하면 이 시기는 케플러갈릴레이베살리우스를 거쳐 데카르트의 철학과 수학적 전통과 베이컨의 사상과 실험적 전통을 관통해 뉴턴의 종합에 이르는 길이라고 본다앞서 근대과학은 고대 그리스인의 과학은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했다다만 근대과학과 고대 그리스는 애초에 그들이 과학하기 위해 세분화했던 자연학과 형이상학에 대해 완전히 다른 출발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


      

      먼저 그리스인들은 인간인 의 합리적 사유와 논리에서 출발해 생각의 틀 안에서 우주의 지식즉 자연학을 구성하려 했다. 반대로 근대과학은 외부 세계인 자연에서 출발해 자연의 물리적 신호를 경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하고 이성의 작용을 통해 합리적인 지식 체계로 만들었다그러다 보니 객관성탈주관화를 추구하게 된다그래서 우리는 근대과학 이후로 아무리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더라도 고대 그리스 방식인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실험을 통해 입증될 수 있는 것만을 과학이라 부른다.   

     

      근대과학과 고대 그리스의 또 다른 지점은 형이상학적 사고로 인해 (수학)’을 어떻게 보고 활용할 것인가에도 있다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학파 철학자들은 자연이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다그들이 보기에 수는 실제로 존재했고이상적이라고 느꼈으며 완전하고 영원한 구조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플라톤도 기하학의 논리적이고 완벽한 면을 이용하여 자연의 존재를 응시했다그러한 태도는 결국 현실 세계와 수학의 세계는 이질적인 방식으로 붕 떠 있게 만들었다이와는 정반대로 근대과학은 현실 세계에 대한 수학적 분석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자연을 수리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실험을 통해 계량적으로 검증한다.  


      이 두 가지의 태도 전환이 크게 드러난 혁명적 순간이 바로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의 등장이다지동설은 기존에 지구를 중심에 두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정반대로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한다는 내용이다이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천체가 회전하는 구조와 지구와 천체를 회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자연스러운 기하학의 원운동을 결합한 것으로 숫자의 세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물리적 현상을 수학적 형식으로 나타냈다이후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계승하고자 객관적인 관찰 데이터에 근거하여 천체의 운동을 수학적 기초 위에 올려놓게 되고 드디어 반박 불가능한 입증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에서 시작된 근대 과학혁명은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통해 완성됐다고 과학사가들은 평가한다뉴턴의 종합이 그 완성의 근거로 제시된다뉴턴의 종합은 이론과 실험이 대등하게 조화되고지상계의 사물 운동과 천상계의 행성 운동을 더  구분하지 않고 물질의 단일한 운동으로 통합하며중력이 진공에서도 작용하는 것을 근거로 연속적인 공간개념(추상적)과 불연속적인 물질 원자개념(구체적)을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뉴턴의 종합은 뉴턴 과학이 성공했음을 의미하게 되면서 이후 다른 여러 과학 분야들에서도 영감을 얻어 같은 방식으로 해나가면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다는 롤모델로 작용하게 되었다이로 다양한 과학 분야의 전반적인 혁명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지식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기독교의 위상이 변화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발달 인쇄술로 널리 출판물의 형태로 보급되게 된다전문지식은 실용서의 모습으로 퍼지기도 하고교재로 삼아 전문적인 과학 교육도 가능해진 것이다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카데미를 통해 인재 양성도 가능해졌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종교적 신념을 넘어서게 된 탁월한 지적 성취는 당시의 기술 장인들에게 닿게 된다이들은 요즘 개념으로 엔지니어에 해당는데중세 암흑기 동안의 천대받던 시기를 지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기술장인들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어가던 때였다수많은 공방 출신 천재들은 지식과 결합하면서 도구의 개발과 개량그리고 이를 이용해 관측과 실험을 거듭해 과학혁명의 선한 순환구조 그 일부분으로 움직이게 된다갈릴레오 역시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기술장인으로서 직접 고배율 망원경을 만들고 실험기구를 직접 제작해 정량적이고 수학적인 자연법칙을 도출해내려 노력했다



      근대 과학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과학 이미지의 모든 것거듭되는 실증실험과 수학의 기틀을 잡았다암흑기라는 오랜 시간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쌓아온 자연에 대한 사심없는 관찰그리고 자연을 수학적 질서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게다가 이 지식들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여 널리 공유할 수 있던 시대적 배경이 결합됐다과연혁명은 우연히 당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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